김교숙, 드디어 명장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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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용 역사를 정리하며 김교숙을 설명할 때는 수식어를 무엇으로 붙일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다.

한국 미용의 기술을 한 차원이 아닌 몇 차원을 높여 놓았고 현재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김교숙 원장.
김교숙 원장은 지난 9월 1일 2015년 미용부문에 명장으로 선정됐다.

김교숙 명장의 선정은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할 정도로 미용계에서 그녀의 50년 미용은 화려했고 많은 스토리를 갖고 있다.

활발한 활동을 하던 90년도에서 2000년 중반까지 미용 잡지에는 그녀의 작품으로 도배가 됐었다고 할 정도로 수많은 트렌드를 잡지를 통해 발표했다.

김 명장은 1962년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지금껏 미용실을 경영하고 있다.
정확히 53년을 미용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국내 미용사 중에서 김 명장의 세미나를 한번 이상 참여했을 정도로 현재까지 1천5백회가 넘는 세미나를 이어가고 있다.

노동부는 이번 김 명장의 선정에 대해 특허 3건, 디자인 등록 10건 등으로 미용 산업 발전을 이끌었으며 전국기능대회·세계대회에서 많은 후배들의 배출해 입상시켜 미용기술 발전에 기여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미용 기술을 가르쳐 사회와 나와 자립할 수 있게 봉사한 점도 높이 평가됐다고 설명했다.

김 명장의 화려한 업스타일은 현재도 미용계를 대표하고 있다고 평가 받고 있고, 일부에서는 그녀의 업스타일 작품은 미용 기술에서 미용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극찬을 하기도 한다.

“제가 어려서부터 국가대표 선수를 했기 때문에 수많은 국제대회를 출전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을 하며 최고의 기술을 자연스레 접목할 수 있었고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 속에 수많은 반복된 연습과 시행 착오가 아마도 현재까지도 새로운 창작을 할 수 있는 힘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김 명장은 82년 CACF(프랑스미용예술인협회) 한국 국가대표, 84년 이탈리아 헤어월드 국가대표 등 80년대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써 국위 선양에 앞장섰다.

사실 김 명장은 그동안 명장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미용인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얻었고 미용실에서 고객에게 서비스하고 제자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나 보람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용인으로써 또 다른 세상에 대한 도전과 계획을 준비하면서 명장을 도전하게 되었다고 김 명장은 설명했다.

“7, 80년대 미국이나 유럽에 나가 대회를 치르면 정말 서럽고 슬펐어요. 한국이라는 나라는 모르죠. 동양에서 왔다고 이상하게 쳐다보죠. 가끔 그때 생각이 나면 눈물이나요. 그때 ‘반드시 한국 미용을 전 세계에 알려야겠다. 이런 서러움을 후배들이 겪지 못하게 하자’는 그 목표를 지금까지 이어오면서 명장에 도전하게 된 것입니다”

1천5백회의 세미나를 하다보니 수많은 에피소드가 많지만 무엇보다도 세상이 빠르게 발전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고 한다.

“80년대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버스를 타고 지방 세미나를 가는데 버스 고장이 잦아 2~3시간이 본의 아니게 늦는 경우가 있는데 도착해 보면 노래자랑을 하면서 기다리며 배우겠다는 의지에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비행기나 KTX로 다니다보니 몸은 편한데 비해 예전에 느꼈던 인간적인 정은 조금 없어지는 것이 아쉬워요. 시골에는 강의료를 없이 무료로 갔는데 떡이나 감자들 싸주면 고마워했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아마 1천5백회의 세미나를 책으로 쓰면 몇 권 분량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김 명장은 지금도 미용실에서 예약 손님을 직접 시술하고 있다. 현재 수원 남문시장에 헤어꼬볼라는 미용실을 같은 자리에서 20년째 하고 있고 30년을 같이한 직원이 2명 있다.

한국 미용 기술의 산 역사 김교숙 명장은 앞으로 한국 미용을 세계 일류로 만드는 것을 마지막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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